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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진국의 이면_주, 독일 한국대사관 신축설계

by 불꽃 posted Sep 1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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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c3korea 05년 3월호: 들여다보기]

글쓴이: 이중용 기자



지난 1월, 한 건축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베를린의 주독일 한국대사관(이하 주독 대사관) 신축을 외국설계사무소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자신이 주독 대사관 신축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이름 모를 독일의 설계사무소가 계획설계를 진행 중이었고, 정부관계자에게 이 문제에 대해 들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다.

유럽연합(EU)의 중심국인 독일의 수도,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가진 상징성과 현재 베를린에 형성되어 있는 재외공관 건물들이 건축을 포함한 자국의 문화를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볼 때, 이곳에서의 재외공관 신축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 문제의 내막을 알기 위해 관계부처 등에 수소문해보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독 대사관의 경우 적당한 부지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개발업자가 보유한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설계와 시공까지 함께 하는 조건으로 일이 진행되면서 외국건축사무소에 설계를 맡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나라마다 독특한 상황이 있고, 그에 맞게 대처해야 하는 외교부의 성격상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건축가들은 "한국 건축과 문화에 대한 의식이 없는 무책임한 행위", "국제적으로 망신스러운 일" 등 한결같이 부정적인 반응이다. 대사관 건축의 상징성과 대표성을 고려한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부지, 설계, 시공을 함께 매입]

주독 대사관 신축설계 과정의 전말은 다음과 같았다.

1990년 10월 독일의 통일 이후 주독 대사관은 1999년 9월 대사관을 본에서 베를린으로 이전하였다. 대사관 이전 전에 이미 청사 신축 계획을 가지고 부지를 물색하였으나 97년 말 외환위기로 인해 청사 신축계획이 취소되면서 사무실 건물을 임대하여 99년 입주, 현재까지 사용중이다. 이후 2002년부터 청사 부지를 다시 물색하였으나 이미 베를린 시 지역 대부분이 개발되어 대사관 측에서 직접 구입하여 건축할만한 부지는 없었다.

그러한 가운데 쮜블린(Zueblin)이라는 부동산 개발회사가 보유한 베를린 티어가르텐 지역 라우흐스트라세에 접한 부지가 청사 부지로 적합한 것으로 판단, 쮜블린 사와 교섭하게 되었다. 쮜블린 사의 조건은 해당 부지에 대사관측이 원하는 조건의 건물을 자신들이 직접 설계, 시공하여 함께 대사관에 매각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건축가 선정 문제를 놓고 대사관과 쮜블린 사가 논의했으며, 처음 쮜블린 사는 자사의 전속 설계사를 쓰겠다고 고집했으나 대사관 측은 대사관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적합한 방안을 찾아보기로 했다.

모색된 방안 중 하나는 대사관이 건축설계 공모를 해서 당선작을 선정, 이를 바탕으로 쮜블린 사와 건물의 재질 등에 대해 협상하고 최종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대사관과 쮜블린 사의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건축설계사, 대사관, 쮜블린 사 각자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칫 설계공모가 무산되거나 또는 최종적으로 쮜블린 사와 계약이 체결되지 않으면 설계공모 및 심사에 필요한 적지 않은 비용부담과 시간 낭비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채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 방안으로 대사관 측 프로젝트 매니저(건축설계사)와 쮜블린 사가 함께 한국인 건축가를 포함한 중견 건축가 수명의 리스트를 만들고 이들의 실적, 작품성향, 비용 및 효율성(베를린 사무실 소재 여부) 등을 검토하여 대사관에 몇 개의 설계회사를 제시하면 대사관이 이중에서 택일하여 쮜블린 사에 추천하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브라운 운트 슐로커만 사와 아스만살로몬 사가 후보지로 제시되었고, 대사관은 두 회사 건축가와의 인터뷰 및 자료 검토를 통해 주독일 호주, 남아공, 프랑스 대사관 등의 건축에 참여한 바 있는 브라운 운트 슐로커만 사를 결정, 쮜블린 사에 추천했다.

이후 브라운 운트 슐로커만 사는 지금까지 기본개념설계 단계에서 대사관과 긴밀히 협의, 한국의 건축양식과 대사관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한 기본설계를 마쳤다. 그리고 이 기본설계 그리고 지금까지 쮜블린 사와 건물재질 및 법률문제에 관한 협상결과를 기초로 대사관과 쮜블린 사 사이의 청사 건축 및 인도에 관한 계약이 조만간 이루어진다. 계약이 이루어지면 쮜블린 사는 브라운 운트 슐로커만 사를 설계자로 고용하는 계약을 체결할 것이다. 브라운 운트 슐로커만 사는 쮜블린 사와 고용계약을 체결하지만, 앞으로 있을 살시설계 등 제반 구체적인 설계 단계에서 대사관 프로젝트 매니저의 통제를 받기로 되어 있다.



[재외공관의 대표성은 어디에]

그러나 이러한 주독 대사관 신축설계 진행과정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었다.

첫째, 설계공모 취소 이후 채택되었다는 두 번째 방안인 '건축가 리스트를 만들고 대사관에 수개의 설계회사를 제시하면 대사관이 이중에서 택일하여 쮜블린 사에 추천키로 했다'는 내용은 논란의 여지가 다분하다. 이에 대해 '통일 독일 현대건축'(주. 시그마프레스, 2004)의 저자인 이선구(숭실대)교수는 "주객이 전도된, 주권국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하며 "일개 개발회사가 부지를 가지고 있다는 이점 하나로 건축설계자를 대사관으로부터 추천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합의과정 일체를 공개하고 담당 공무원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설계공모를 하려고 했으나, 그것이 무산되거나 쮜블린 사와의 계약이 체결되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하지 않았다'는 설명 또한 주권국가를 대표하는 재외공관이 부지구입에 너무 연연한 나머지 개발회사에 끌려다녔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는 지적이다.

둘째, 설계자 선정 문제이다. 주독 대사관 측은 대사관 설계자로 선정한 브라운 운트 슐로커만 사가 주독일 호주, 남아공, 프랑스 대사관 등의 건축설계에 참여한 바 있다고 성정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프랑스 대사관의 경우 크리스티앙 드 포잠박이 설계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주독 대사관 측에 알아본 결과, 브라운 운트 슐로커만 사는 상기 프로젝트의 독일 현지 파트너 건축설계사로 참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독일 내에서는 외국건축가가 단독으로 활동하기 어렵기 때문에 파트너 형태로 외국건축가의 실시설계를 하는 사무실이 많다. 이들은 대개 그 디자인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회사들이라는 것을 감안해볼 때, 단지 대사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설계자를 선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셋째, 건물 재질 및 법률문제가 기본계획설계보다 먼저 이루어졌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한국과 독일 양국에서 활발하게 건축활동중인 이은영(한양대)교수는 작년 5월, 주독 대사관 설계 공모의 움직임이 실제로 있었고, 자신도 참여했다고 밝혔다. 대사관 측의 설계공모를 준비하고 협의하는 업무를 담당한 퓌츠 & 홍 사에서 7, 8월경 공식적인 설계공모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지만, 이후 별다른 말이 없다가 10월 경, 설계공모는 무산되었다. 그 사이에 설계공모가 이유없이 지연되는 것에 대해 수 차례 문의를 했고, 그 과정에서 모든 건축자재와 공사비가 결정되면 설계공모를 시작하겠다는 해괴한 해명만 들었다고 한다. 그는 "기본 개념도 없는 상태에서 대사관 측과 개발회사 사이에 자재와 견적에 관한 상세한 협의가 몇 달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것이 비상식적인 방식이라는 본인의 자문도 반영되지 않았다. 대사관이라는 상징성과 대표성을 가진 건축의 문화적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나의 개발 혹은 공사로 밖에 인식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자재와 견적에 관한 협의가 먼저 이루어지고 설계가 나중에 결정되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견적이란 설계가 나와야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축과 문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현재 베를린에 있는 많은 대사관들이 자국문화를 알리는데 건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주요 국가들은 통독 후 모두 설계공모를 통해 자국의 건축가들을 선발(미국대사관 신축: 찰스 무어, 영국대사관 신축: 마이클 윌포드, 프랑스대사관 신축: 크리스티앙 드 포잠박)하여 건축하였다. 스칸디나비아 5개국(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또한 설계공모를 통해 당선된 핀란드 건축가의 계획안을 마스터플랜으로 하고 개별 건물은 각각 5개국 출신 건축가들이 건축하였다. 우리 한국과 비슷한 위상의 멕시코 역시 외무성 주관의 설계공모를 통해 자국 내 건축가인 곤잘레스 데 레온과 프란시스코 세라노를 선발하여 대사관을 건축하였다. 인도의 경우 독일 출신 건축가인 레온 볼하게 베르닉이 건축하였다. 그러나 이 건축가의 경우, 독일 건축계에서도 그 자질과 명성이 확보된 경우이며, 심지어 대사관의 국가적 정체성을 감안하여 대사관 신축건물에 인도산 석재를 사용하여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이외에도 오스트리아 대사관(한스 홀라인), 네덜란드 대사관(렘 콜하스) 등도 자국의 건축가가 건축한 바 있다. 이런 상황들에 비춰볼 때 지금의 주독 대한민국 대사관의 행보는 어떤 관점에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번 주독 대사관 신축설계 건에 대해 이선구 교수는 "표면상으로 참여와 투명성을 내건 현 정부의 또 하나의 커다란 외교적 실책이며, 구태의연한 외무관리의 타성과 안일함을 보이는 작태"라고 지적하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대사관 부지부터 실행건축사 및 시행사 선정과정을 공개하고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승효상(이로재)씨 등 대사관 설계과정에 대한 소식을 접한 건축가들 또한 지금의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분위기다. 이은영 교수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화사업이 비문화적인 시각으로 접근되었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한국의 국제사회에서의 이미지와 한국문화에 대한 책임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아무리 운영 및 재정상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취할 수 없는 행위"라고 단언했다.

입버릇처럼 매년 등장하는 정치선전 메뉴가 바로 '문화강국', '문화선진국'이다. 그러나 이번 주독 대사관 신축설계 문제를 통해 정부가 문화선진국을 추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그 대상인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지난 1948년 로스엔젤레스에 총영사관을 설치한 이래, 재외공관 국유화 사업을 통해 우리나라가 보유한 재외공관 수는 대사관, 영사관, 대표부를 모두 포함해서 129개 이다. 비단 베를린 주독 대사관 뿐아니라 앞으로 많은 재외공관이 지어지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정부는 '상황에 따른 대처'라는 말로 한국 건축과 문화를 외면할 것인가? 시간과 비용은 결코 문화에 앞서지 않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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