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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거주민에 대한 단상

by 천연기념물 posted Oct 2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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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말에 독일에 갔을 때 우연히 재독 동포를 대형할인마트 앞에서 만났더랬습니다.
우리아이들이 큰애는 세살, 작은아이는 11개월 정도 되었을까 할 때여서, 지나가는 동양인이면 모두 한국인인줄 알고 뛰어가서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낼 때였지요.

그분은 독일에 체류한 지가 약 25년 가까이 되었다고 하셨고, 그동안 많은 한국사람을 만났지만
먼저 다가와서 인사를 한 사람은 우리가족이 처음이라고 하시면서 얼마나 반가워 하셨는지 제가
당혹해 했을 지경이었습니다. 그 무렵 저희들은 새롭게 독일생활에 적응하느라 아주 힘든 시기여서 아직 승용차도 구입하지 못한 상태였지요.

제가 마트에서 구입한 물건들을 유모차에 실는 것을 보시더니, 직접 저희들을 그분의 승용차에 태워서 우리집까지 데려다 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자신은 십수년전 독일여자랑 결혼을 했고, 한국을 떠나온 후로 아직 한번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그리고 독일에 살면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 있다면, 88올림픽 때 한국경제발전상을 TV로 생중계될 때 였다고...

그분은 늘 알게 모르게 직장에서 푸대접을 받았는데, 어느 날부터 주변 사람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그게 다 88 올림픽 때 한국의 발전상을 목격하면서 시작된 변화라고
하시더군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빨리 공부 하고 귀국해서
우리나라의 발전에 힘써야겠다"고...

차라도 한 잔 드시고 가시라는 저의 만류를, 시간이 허락지 않는다며 뿌리치고 서둘러 돌아가시는
그분의 뒷모습을 보면서 "향수에 젖은 한 노신사"의 외로움을 사무치게 느끼게 했습니다.
그분 역시 수십년 전 가난을 탈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독일에 광부로 지원해서 오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3년의 계약기간이 만료되고 어느 공장에서 일하다가 체류문제도 있고해서 국제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그분이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제게 물어본 것은 한국이 정말로 그렇게 잘 사느냐는 그 한마디였습니다.

그리고 너무너무 가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자신은 늘 그 옛날 지겹도록 가난했던 시절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그냥 거기서 눌러앉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그 시절 우리나라 경제사정이야 위에서 언급하신 것 이상으로 비참한 상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들의 애환을 보듬어 안을 때가 된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이 세계경제규모면에서
10위권을 자랑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국가와 가족을 위해 헌신한 이들을 위해 한인회관 하나
못지어 드린다면 말이 안되지요.

정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난 해 노대통령이 독일에 자그마치 일주일 씩이나
머물렀는데, 그분이 거기서 지출한 하루치 경비만 해도 훌륭한 한인회관을 짓고도 남을 것입니다.

만약 국가가 이 문제를 외면한다면, 우리가 나서서 모금운동이라도 펼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