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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의 여성무당이 뜻함은?

by 원효탄 posted May 2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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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의 여성무당이 뜻함은?

우리 백두산 겨레의 역사를 생각하다 보면 자랑스럽고 특징 있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특기할 점은 여성의 힘이 크다는 것이다. 상고사 이야기에 마고할머니가 나오지만 그 때 왜 할아버지가 아니고 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 되었는지 궁금함이 늘 있어왔다. 그런데 우리 겨레의 역사를 곰곰이 되돌아 보면 역시 여자들의 몫이 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난 1월 17일자 오마이뉴스에 만신 김금화 선생의 삶을 주제로 한 “계화”라는 소설을 쓴 작가 이경자씨의 글이 실려있는 것을 읽었다. 이 글에서 그는 우리 나라 무당의 95%가 여성이라고 했다. 나는 우리 백두산 겨레의 기둥 얼을 이어 온 것이 민중이며, 그 민중과 삶을 하나로 묶어 낸 정신적 형태가 “무속”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이경자씨의 글을 읽으며 그 중에서도 우리 여성들의 힘이 컸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남성들은 독립운동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 싸운 대신 여성들은 고향에 남아 집안을 지키며 자식들을 키워야 했고, 일제의 갖은 탄압과 굴욕을 맞받아 싸우며 삶을 엮어가야 하는 고달픈 생활을 했다.

세계 운동경기에 나가서 상을 타는 숫자를 봐도 그렇고 일제 강점기 욕된 과거를 청산하기 위한 길에서도 서슴없이 일어나 싸우는 분들은 남자보다는 여자가 견결한 입장에 서있다. 가까운 예로서 민족자존심을 찾고, 잘 못된 과거사를 올바로 세우기 위해 “정신대”할머니들은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데모를 하는 것을 봐도 우리 백두산 겨레의 전통을 이어 오는 데 있어서는 역시 여성들이 큰 몫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을 좀 더 자세하게 한다면 가부장 질서로 유지되던 나라에서 남자들이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탓으로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우리 겨레의 여성들은 일제 강점군에게 꽃다운 청춘을 유린 당했다. 그런 오욕의 삶을 강요 당한 할머니들은 오늘도 역사를 바로 잡고 민족자주와 민족정기를 살리기 위해 거리에 나서 싸우지만 같은 시대 같은 굴욕의 삶을 경험한 남성들은 친일파 후손들이 “자유민주주의”라는 탈을 쓰고 온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알면서도 여성들만큼 조직적으로 싸우지 못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통해 봐도 그렇고 일제 강점기를 보더라도 우리 여성들의 역할은 말과 글로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러나 일제가 쫓겨간 후 60년이 지난 오늘도 침략군에게 강제로 모욕된 삶을 강요 당한 할머니들의 어려웠던 삶이 전체 겨레의 아픔으로 반영되지도 못하고, 당사자들 개인의 운명인양 다만 사회적 동정의 차원에서 처리되고 있는가 하면, 남녀평등이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도 주권자의 평등한 인간으로서 제대로 대우 받지도 못할 뿐 아니라 올바로 평가되지도 못하고 있다.

왜?
답은 간단하다. 이미자씨의 노래처럼 “여자이기 때문에”!!!
그것도 주권 없는 미국의 신식민지 대한민국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홍익인간]사상에 비추어 볼 때 잘못 전해 온 가부장적 사회질서가 사대주의 식민사관 추종자들에 의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탈을 쓰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국민의 역사의식이 오도되며 온존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시민사회”가 정착하게 되고, 과학정보시대가 시작 하는 21세기 인간관에 어울리지 않게 잘못돼도 한참 잘 못된 역사이고, 전도된 사회현상이다.  
이 잘못됨이 후천개벽으로 고쳐져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 여성들은 이름을 내세우기에 앞서 묵묵히 오직 불의에 항거하며 삶의 틀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깊은 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이처럼 하고도 한 것이 없이, 어떤 고난과 역경에 부딪쳐도 굽힘과 걷어치움 없이 미래에 사는 삶의 모양새가 사람답게 더불어 사는 모양새다. 이것이 대황조 한배검님께서 가르치신 남녀 구별 없는 사람으로서의 사람, 즉 [홍익인간]의 모범이며 [홍익사상]을 온 누리에 펼쳐 문명 된 인류사회를 이끌어갈 도덕적 인간의 본보기라 생각해 본다.

폭풍이 불어와도 나무는 흔들릴지언정 대지는 동요 없다. 미제에 의한 “세계화”라는 정치·경제적 “쓰나미”가 휘몰아 쳐 온다 해도 제 정신 [홍익사상]을 마음 깊이 새겨 온 사람들은 흔들림이 없다. 이렀듯이 미·일 외세와 그 앞잡이들이 단말마적 발악을 하며, 우리의 정신문화를 낙후한 문화유산이라고 무시하고 탄압해도 95%의 무당은, 우리 백두산 겨레의 여성들은 백두산처럼, 한라산처럼 묵묵히 [홍익인간]의 기본 틀을 알게 모르게 이어오고 또 이어 가고 있는 것이다.

95% 여성무당!!!

개천이래 만대를 이어 온 민족정기를 새롭게 되찾아 잘 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고, 겨레가 하나로 되고, 사람이 사람답게 더불어 사는 사회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시대적 사명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95% 여성무당의 삶은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특히 이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서 “진보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도 던져주는 이야기(요즘엔 ‘메시지’라고 흔히 표현하나 나는 그 말에 별로 동의하지 않기에 어색하겠으나 이야기라고 쓴다)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이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본 받아야 할 일인가. 이를 좀더 과학화, 조직화, 체계화 한다면 사람다운 사람이 옳게 평가되는 [홍익인간]세상은 그만큼 더 빨리 온다. 사해의 가난한 나라들에서 민중의 권리를 대변하는 올바른 정권들이 하나 둘씩 많이 세워짐은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홍익사상]을 알면, 그리고 또 우리 [무속]을 알면 거기에 우리 사회가 당면한 민족문제, 계급문제를 우리 겨레의 요구에 맞게, 민중의 소원대로 푸는 지혜가 있다.
{홍익사상}을 과학화, 조직화, 체계화하고 생활화하자! 여기에 우리 겨레가 미래를 열어가는 길이 있다.

끝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도움이 되는 구절이라 생각되어 작가 이경자씨가 김금화씨와 나눈 이야기의 한 구절을 여기 옮겨본다.    

"여자의 일생 같다"고 말하자 그는 대뜸 "사람의 일생"이라고 고쳤다.

2006년 1월 23일   원효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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