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한인 천주교회 설립 40주년 행사 열려

by 운영자 posted Aug 2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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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베를린 한인 천주교회가 설립 40주년을 맞아 전야제(2일)와 감사미사(3일)로 나누어 40년 세월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1971년 베를린에 뿌리내린 한인 성당은 현재 한국 마산교구 소속 최경식 신부가 제13대 신부로 파견되어 사목활동을 하고 있다.

7월 2일 19시 30분, 장철두 사목회장의 개회로 전야제가 시작되었다.

내빈으로 한국에서 이 행사를 위해 방문한 마산교구 교구장인 안명옥 주교와 베를린 한인 성당 제 1대, 3대, 9대 신부를 역임한 바 있는 김차규 신부 소개가 있었다.

내빈 소개 후 '공동체가 걸어온 40년'이라는 동영상 상영이 있었다. 초창기 한복을 입고 공항에서 찍은 사진과 세례식, 김수환 추기경님 방문, 피정, 성지순례 등 추억의 영상물을 보면서 지나온 세월을 더듬으며 웃기도 하고 숙연해 하기도 하였다.

주일학교 유치부 어린이들의 노래와 율동, 청소년반의 공연이 있은 후 레지오 마리애 단원 30 여명이 나와 '우리 자모'를 부른 뒤 율동을 곁들여 '개똥벌레'를 불렀다.

1부 마지막 순서로 글로리아 합창단의 합창이 있었다. 2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가진 성당 신자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합창단인데도 훌륭하게 노래를 불러 많은 박수를 받았고 두 번의앵콜을 받았다. 두 번째 앵콜공인 '아침 이슬'은 다함께 불렀다.

1부 순서를 마치고 30분간 휴식 시간에는 '은총의 모후' 쁘레시디움에서 준비한 150 여줄의 김밥과 떡, 쿠헌 등을 먹으며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을 위해 정원에 자리를 준비해 두었는데 아쉽게도 비가 와서 강당에만 머물러야했다.

2부 순서는 봉사 단체인 '울타리' 모임 봉사자들이 6개월 동안 준비한 공연이 있었다. 다같이 옷을 맞춰 입고 나온 평균 연령이 65세이며 대부분이 초보자들인 이들은 1주일에 3번을 모여 준비하는 등 노력 끝에 훌륭한 공연을 보여주었다.

소프라노 박모아 덕순씨가 나와 '주기도문','아베마리아'를 부르고 김도미니카씨가 전통 춤 공연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주일마다 감미로운 음악으로 미사를 빛내주는 베를린 한인 성당 성가대 단원들의 노래가 이어졌다. 박상율씨가 지휘를 맡았고 백수아씨가 반주를 맡아 4곡의 노래를 부른 뒤 앵콜 곡을 한곡 더 부르고 다 같이 손잡고 '만남'을 같이 부른 후 전야제 행사를 마쳤다.

7월 3일에는 베를린 한인 성당 설립 40주년 감사 미사가 있었다. 오전 11시 30분에 시작된 감사 미사에는 신자와 평사 시 잘 나오지 못하고 있던 2세, 독일인 배우자, 친인척과 축하객까지 400 여명이 참석하여 입추의 여지가 없이 성당이 꽉 찼고 일부는 미처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에 머물러야했다.

이날 감사 미사는 마산 교구 교구장인 안명옥 주교, 베를린대교구 보좌주교 마티아스 하인리히 주교, 베를린 한인 성당 1대,3대,9대 본당 신부를 역임한 김차규 신부, 말로 신부, 최경식 신부가 집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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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성당 40주년 감사 미사 중에 26명 신자가 견진 성사를 받았다.

안명옥 주교는 미사 강론을 "1971년 베를린 지역에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며 살아가기로 다짐했던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가 탄생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베를린 한인 공동체 설립 40주년을 함께 기념하고 자축합니다. 40년 동안 함께 살아온 공동체 교우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축하의 인사드립니다"며 시작하였다.

 

"베를린 한인 공동체가 걸어 온 40년이라는 세월은 하느님을 믿는 다는 것이 도대체 의미가 있기는 한가? 하느님을 믿으며 살면 어떻게 되는가 라는 물음과 씨름하면서 살았고, 이방인으로 피해갈 수 없었던 온갖 어려움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희망 없이, 하느님 없이 사는 삶을 포기하고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사는 삶을 선택하면서 살아 온 세월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들의 삶에 있어서 베를린은 결코 지울 수 없는 문신으로 각인되어 있을 것입니다. 서로 출발은 달리하지만 베를린이라는 공동체에 모여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같은 자녀로서의 인연을 맺으면서 40년을 살아 온 한인 교우 여러분들에게 거듭 감사드립니다. 서로 믿음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행자로서 40년을 살아 온 교우 여러분들에게 하느님께서 풍요로운 복을 가득 내리시고,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실 때문에 교우 여러분들이 행복을 누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그날 견진성사를 받는 26명과 하객들을 위해 가톨릭에서 행하는 견진성가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감사 미사가 끝난 후, 내빈 소개가 있었고 이어서 내빈으로 참석한 베를린대교구 보좌주교 마티아스 하인리히 주교의 인사말이 있었다.

베를린 교구에서 한국 성당은 빼 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하고 독일 신자들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며, 몇일 전 선종하신 게오르그 막시밀리안 스테르진스키 추기경도 생전에 40년을 맞이한 아름다운 공동체라고 칭찬을 하며 축한한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고 하였다. 한국의 전교 정신을 독일에도 뿌려달라고 하며 한국 신부를 파견해 주고 있는 마산교구 안명옥 주교에게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끝으로 즐겁고 영적으로 풍성한 축제가 되길 바라며 앞으로도 계속 베를린 교구에서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고 하여 많은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미사 후에 성당 정원에서 2세들로 구성된 풍물패의 축하 공연을 보면서 식사를 시작하였다. 간간이 비가 내렸지만 정원에 쳐 둔 천막 안에서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식사 후에 다시 풍물패가 나와 공연을 하자 신자들은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정원 가운데로 나와서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했고 마티아스 하인리히 보좌 주교도 같이 나와 흥겹게 어깨춤을 추며 같이 어울렸다.

베를린 한인 성당은 1971년 6월 10일, 마산 교구 소속 제1대 김차규 신부가 부임하여 첫미사를 집전하면서 출발하여 현재 제13대 최경식 신부에 이르고 있다.

꽃 같은 나이인 20대에 독일로 나온 광부, 간호사들이 설립의 기초를 마련하고 사랑으로 가꾸어온 베를린 한인 성당은 그들이 지켜온 세월만큼 당당하고 단단한 모습으로 40주년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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