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답속인(山中答俗人)
푸르름을 한없이 뽐내던 나뭇잎들은 가는 세월을 저버릴수 없었는지 한잎 두잎 떨어져 푸른 옷들을 추운지도 모르고 다 벗어 버렸다.바람결에 굴러다니는 낙엽은 어디로 갈까를 외쳐보지만 억센 바람도 소슬바람에도 갈곳 몰라 헤메는 날들속에 너무 빨리 흘러간 시간의 야속함과 비정함이 어울려 저물어가는 세월을 무심히 바라본다.이제 쌀쌀한 겨울을 맞이하면서 덧없이 흘러간 한 해를 돌아보게되니 너무 바빠서 두서를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은 아니었나 아니면 어리석은 사람이 갈 바를 몰라 두리번 거리는 모습이되어 천방지축 (天方地軸)으로 하루를 정신없이 살아온 날들인 일 년을 후회(後悔)와 원망(怨望)속에 먼 하늘을 바라보며 하소연도 하여보지만 뒤돌이킬 수 없는 것이 세월이다 보니 다가오는 새로운 꿈을 안겨주는 새해를 또 다시 기약(期約)하며 사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아쉬움이 맴도는 올해를 보내며 한시를 읽어보는 시간이 있다는 것은 그래도 마음의 여유가 남아 있다는 것이 아닐까? 이태백의 산중답속인이란 한시를 읽으면서 이태백의 이 시는 산 속에서 속인(俗人)의 물음에 답한다는 아주 유명한 시라고 한다.
問餘何意棲碧山(문여하의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누군가 나에게 물었지 어찌하여 아무도 없는 이 푸른 산에 들어와 살고 있느냐고.웃으며 아무런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이 오히려 펀안하구나. 복숭아 꽃잎은 흐르는 저 물속에 덧없이 흘러가고,아 또 다른 세상 속인들이 사는 인간세계가 아니도다! 말 많은 세속(世俗)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상을 뒤로하고 산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에게 왜 그토록 궁벽한 곳에서 사냐고 물어보지만 오히려 대답하지 않고 웃음으로 답하니 마음이 편안하다는 이태백의 마음과 생각이 아름답고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가 넘쳐나는 것 같다. 그런데 산중이 반드시 산 속 깊은 산속뿐인가 ?
세속의 왁자지걸하는 소리는 누구의 북치는 소리인줄도 모르는 저자거리에 살면서도 남들과는 별나게 원칙을 지니며 살아간다면 그것이 산 속의 생활과 무엇이 다를까 ? 모든 사람들은 명예와 부귀를 숨차게 쫒아가며 인생을 잘살려고하고 있지만 나는 마음속에서 울려나오는 산속의 새소리를 벗삼아 나만의 한적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이 산속보다 어쩌면 더 깊은 산속일 것이다.얼마 안남은 올 해를 미련없이 보내며 찿아오는 신년에는 아무나 보고 꼬리를 흔든는 강아지처럼 이래도 웃고 저래도 웃으면 살아간다면 세상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할까 ?
모든 일에 천방지축처럼 되어버린다면 아마도 흔이들 말 하는 –나사가 풀려있다고 –웃지나 않을까? 그래도 험한 얼굴로 푸르락 붉을락 하는 것보다는 더 나을지도 모르지 않을까? 어찌되었던 새날의 새 아침을 맞이하는 무술년에는 누가 무어라해도 웃으면서 맞이하는 새해는 세상만사 일사천리가되어 좋은일만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속에 새날을 맞이하기위하여 한걸음 한걸음씩 닥아가고 있는데 …그런데 웃음으로 맞이 할려는 마음이 될려면 어찌 하여야 될까 ?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에서 중오지필찰언(衆惡之必察焉)하며 중호지필찰언(衆好之必察焉)하느니라.여러사람이 미워할지라고 반드시 살펴보아야하며 여러사람이 좋아할지라도 반드시 살펴보아야 한다.
사람은 각기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며 여러사람의 의견이 모아져야 할 경우가 많이 있다. 여러사람의 의견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군중의 심리나 경향(傾向현상이나 사상, 행동 따위가 어떤 방향으로 기울어짐)이란 때론 옳지 못한 것에 치우칠 수도 있으니 대중 의견의 따름에도 자신의 주체의식(主體意識)을 갖고 옳고 그름을 따져가야 함을 뜻한다고하니 마음을 다스려보아야겠다.
불교는 전통적으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중생들이 탐(貪)진(嗔)치(癡)세가지가 인생을 괴롭게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즉 삼독(三毒)이 마음의 눈을 가리고 주어진 인생을 그늘진 곳으로 가게 만들고 있다. 욕심이 성내게 되고 어리석은 마음이 생긴다.탐욕은 무엇때문에 생기는가 ? 나 라는 존재를 내세우다보니 남이야 죽든말든 상관 할 필요가 없다. 어떻게 되었던 나만이 혼자 잘 살면 된다는 생각에서 욕심이 생기고 마음의 눈과 마음의 문을 잠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주위의 일들을 자기중심으로서 처리 할려고 하다보니 남에게는 눈을 돌릴 시간이 없다고 한다.
나를 소멸(燒滅)시키다보면 나의 존재는 남을 위하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 하는 염려가 도사리고 있어 욕심. 탐(貪)과 성냄 진(嗔)과 치(癡)어리 석은 마음은 없어 질수가 없다고 한다. 나를 죽이고 남을 생각하는 시간을 모두 가져본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하여 질까?
거울속에 비쳐진 나의 모습에서 -주름살과 함께 품위가 갖추어지면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는 위고의 말처럼…- 마음의 향기와 인품의 향기가 자연오상용스럽게 우러나는 삶을 무술년 (戊戌年) 새 날의 새 아침에는 기쁨으로 맞이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2017.12. 오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