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간호요원회 주최 "경로잔치"
by 관리자 posted Aug 01, 2006
5월13일 Wundtstr에 위치한 베를린 가톨릭 독일 여성연맹 회관에서 교민 약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간호요원회(회장 백덕심)가 주최한 제28회 경로잔치가 열렸다. 이제 어느덧 허옇게 머리가 센 간호요원회 회원들과 교민들이 어울려 지난 세월을 되새김하며 40여 년 간 독일 땅에서 살며 겪은 애환을 되돌아 보며 즐긴 축제의 자리였다.
백덕심 간호요원회 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바쁘신 중에도 28년째 맞이하는 경로잔치에 와주신 여러분께 간호요원회를 대표해서 감사드린다면서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사랑으로 감싸주시고 추억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환도 베를린 한인회장은 축사를 통해 28년째 맞이한 경로잔치를 축하하면서 40여 년의 긴 세월이 흘러 여러분들이 이제는 경로잔치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건강하시고 자연과 더불어 열심히 생활하시라고 말했다.
연합회장선거에 출마했던 하영순씨도 특별히 참석하여 경로잔치를 축하해 주었다. 하영순씨는 지난 경로잔치에 이어 이번 경로잔치에도 많은 선물을 기증하여 풍성한 잔치가 되도록 하였다. 하영순씨는 모범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베를린한인회와 간호 요원회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면서 간호요원회의 다음 경로잔치에도 선물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번 경로잔치에는 특별히 파독 40주년을 맞는 간호사들을 축하하며 꽃다발을 선사하였다.
이후 간호요원회 임원들이 고향 노래를 합창하였으며, 문화공연에서는 김도미니카씨의 화려한 태평무, 신경수씨와 2세 청소년들이 함깨 화관무를 선보였다. 메아리 합창단(단장 한기숙)에서는 "Flying Free", "내마음의 강물", "울산 아가씨"등을 불러 주었다. 정유선씨가 "제가 이런 사람이면 좋겠습니다."란 시를 낭독하였으며 최홍자씨가 봉선화, 새타령, 아리랑을 불러 고향의 분위기로 이끌었다. 문화 행사후 간호요원회에서는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식사를 대접하였으며 이후 노래자랑과 복권등의 행사가 저녁까지 이어졌다.
파독 40년을 맞이 하는 간호요원회는
동서 냉전이 한창 진행중이던 1966년 10월 15일 동독 속의 섬이었던 서베를린 템펠호프 공항에 한국의 간호요원 1천126명이 처음으로 도착했다. 대규모 공식 파독(派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언어장벽 외에도 문화와 가치관, 행동방식 등 모든것이 다른, 독일 사회에 적응하는 일은 꽃다운 나이의, 특히 여성인 이들에게는 너무나 힘들었다.
힘겹고 외로운 생활 속에서 서로 만나 모처럼 우리 말로 대화하며 서로를 위안하던 이들은 72년 독일 전역에서 최초로 한국인 간호사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은 추후 간호 조무사회와 통합해 서베를린 간호요원회로 개칭됐다.
베를린에 이어 각 지역에 간호요원회가 설립됐으며, 지난 86년엔 재독간호연합회가 창설됐다. 백영훈 산업관리공단 이사장은 간호사협회지에 기고한 글에서, 박 대통령이 61년 하인리히 뤼프케 서독 대통령의 초청을 받고 경제원조를 얻어내기까지에는 파독 간호요원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가던 서독은 61년 한국에 1억5천만마르크의 상업차관을 제공하려 했으나, 당시 국민총소득 87달러, 한국은행 외환보유고 2천300만달러, 실업률 23%, 물가상승률 42%, 저축률 3%의 극빈국이었던 우리 나라를 보증서줄 외국 은행이 없다는 것이 장애였다. 그러나 3년 동안 간호요원 2천 명, 광부 5천 명을 파독하고 이들의 봉급 국내송금 창구를 독일 은행 코메르츠방크가 맡는 조건으로 이 은행이 지급보증을 함으로써 차관을 제공받게 됐다. 파독 간호요원들과 광부들은 돈을 벌거나 외국에 나가보기 위해 독일로 왔지만 열심히 일해 받은 봉급을 아껴 대부분 국내 가족에게 송금함으로써 한국 외환보유고증가와 경제발전에 또다시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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