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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시절
2006.04.11 15:43

한운사의 인생만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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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물이 많이 온다. 김영광(金永光)씨가 뭘 보내왔다. 국회의원 하던 사람이 무슨 사연일까.어느날 그는 서울 남부터미널로 가는 지하철에 탔는데 옆자리에 앉은 40대 여인이 무엇을 읽으면서 소리까지 내면서 울더란다. 남부터미널에서 내려 남행 버스표를 사려는데, 또다시 그녀하고 앞뒤 자리가 되었다. 궁금해서 아까 뭣 때문에 그렇게 우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핸드백에서 유인물을 꺼내주었다. 평택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읽다가 그만 그도 시큰둥해졌다. 유인물 내용은 5·16 뒤의 이야기였다.미국은 그때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대한 원조도 끊겼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F 케네디. 그는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애걸복걸 끝에 잠시 인사만 나누게 되었다.

호텔에 돌아와 생각 끝에 우리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독일에 특사를 보내서 1억4000만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빌린 돈이었다.

독일에 보낼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데 4만6000명이 몰려 왔다. 그들 중에는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맞이하러 김포공항에 왔을 때 가족과 친지들이 엉켜 눈물바다가 되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그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간호사들은 울면서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 종일 닦고 또 닦았다. 광부들은 지하 1000m 이상의 깊은 굴에서 지열을 이겨내며 땀을 흘렸다. 서독 방송·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몇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은 서독을 방문하게 되었다. 뤼브케 대통령은 그와 함께 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기에 500명의 광부들은 작업복 차림으로 모여들었다. 애국가 연주가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제대로 부를 수가 없었다. 박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시커멓게 그을린 광부들을 보니 역시 목이 메었다.

“우리 열심히 일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합시다. 가난한 우리나라 국민들을 생각합시다.”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광부들과 간호사들도 모두 울면서 육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갔다. 어머니… 어머니… 옷자락을 붙들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조금만 참으세요. 조금만 참으세요.” 육 여사도 눈물을 삼켰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차 안에서 그는 박 대통령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하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박 대통령은 “돈 좀 빌려 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우리도 공산주의와 대결하고 있습니다. 경제를 일으켜야겠습니다. 돈 좀 빌려주세요. 꼭 갚겠습니다!”당시 필리핀 국민소득은 170여달러. 태국은 220여달러인데 한국은 76달러였다. 세계 120여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사는 나라가 우리나라였다. 그런데 1964년에 우리의 국민소득 100달러. 단군 할아버지 때로부터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머리카락을 팔던 시대가 있었다.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팔던 시대가 있었다.

쥐털로 세칭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판 적도 있고, 돈 되는 것은 무엇이든 했다. 그리하여 1965년에는 수출 1억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했다.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치르는 사이 세계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후손들이여! 피땀과 눈물로 엮어진 오늘의 결과임을 명심하라.”김영광씨의 ‘가슴 적신 어떤 사연’은 이런 것이었다. 얼마전 나는 강원도 홍천 지나서 있는 대명콘도미니엄이라는 데 가서 세미나를 했다. 오가면서 그 옛날 아무 것도 없었을 숲과 골짝에 현대식 건물과 시설들이 있는 것을 보고 박정희 대통령을 연상했다. 알아주든 말든, 역사는 세상을 이렇게 엮어 나가는 것이라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