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33대 한인회

조회 수 140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kh24.jpg

 

베를린  한인회는  통영의  딸  신숙자 씨 모녀 구명을 위해 베를린의 각 종교단체와  자치단체,  모임들을  찾아  다니며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지난 10월  14일과  28일에는  북한대사관  앞에서  신숙자  모녀  구명을  위한  항의시위를  하였다.  특히  28일에는  국제인권협회  관계자들과  신숙자  씨의  남편  오길남 박사가 한국에서 와 50여명이 함께 시위를 하였다.

 

이에 앞서 오길남 박사는 10월 26일 16시에 베를린 감리교회에서 2시간 동안 강연회를 가졌으며이날 교민 약 40여명이 강연회에 참석하였다. 오박사는  자신이  독일에  있었을  때 상황과  북한에  들어간  경위,  북한에서 겪었던 일, 덴마크에서 탈출과정, 탈출 후  음악가 

윤이상  씨에게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돌려달라고 애원했던 일, 그간에  자신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시절  정부관리로부터  참담한 

대우를  받았던 일들을 말하였다.


북한에 그의 가족이 도착했을 때, 그때가 추운 겨울이었다고 한다. 그때 한복을  입은  어린이들이  마중을  나왔었는데 그날 숙소에 도착한 후, 신숙자 씨는  눈물을  흘리며  오박사에게  아이들을 보았느냐 그 아이들 그 추운 겨울날씨에  그렇게  얇은  옷이며  신발이며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저럴  것이라고  생각하니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고  하였다.    신숙자씨는  마산간호학교를  나와 간호사로 일하다 파독되었다. 이날  오박사의  북한체제비판의  두서없는 서론에 긴 관계로 몇 분의 언성이  높아져  진행이  원활하지  못하였다. 오박사의  강연이 

끝나고  교민들의  질문시간에  오박사에게  북한에  억류된 가족사진을  어떠한  경로를  통해  얻었냐는 등 여러 질문들이 있었다.이어 탈북자 김태진 씨의 증언이 있었다.  그는  현재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의 대표로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탈북하다  잡혀  요덕  수용소에  갇혀다가  신숙자씨  모녀를  보았다고  증언했다.  당시는  그는  신숙자씨가  옥수수로 만든 와플을 줘서 먹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옥수수로  만든  것이  맛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그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가  탈북하여  한국에 온 후 오박사를 통해 독일에서 와플기계를  가져갔다는  말을  했다고  하였다.  처음에  오박사는  그가  자기에게 무슨  목적이  있어  접근하려는  줄  알고 심히  경계를  하였다가  와플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을 열었다고 하였다.이외에도  오박사는  27일  13시에  베를린  니콜라이  교회에서  독일  국제인권협회(IGFM)가   마련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독일 기민당(CDU) 인권위원회  대변인  에리카  슈타인바흐  의원이 참석, 신 씨 구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오박사는 지금도 술이 없으면 제 정신으로 하루를 살 수 없다고 한다. 그가 93년  “김일성주석,  내  아내와  딸을 

려주오”의  제목으로  책을  출간하였다가 절판이 되었는데 지난 6월 북한인권운동가 김미영 씨에 의해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도서출판 세이지 刊)으로  제목으로  재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오 박사는 85년 자신의 入北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윤이상 씨가 내게 편지를?’ 나(오길남)는 놀람 반 불안 반으로 편지를 받았다. 왜냐하면  윤이상이  北과  내통한다는  걸  독일에 사는 우리들은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거물이었다.‘...간난신고  끝에  학위를  취득한  것을  축하합니다...이제는 민족통일운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하오. 그러니  북한으로  가서  그동안  배운  지식을  동포를  위해  썼으면  하오...’...(중략)...윤이상씨는  내게 

거듭  권했다.  ‘고생하지  말고  북한으로  가시오.  거기가면  오  박사는  대접을  받으면서  학문을 이룰 수가 있소’” 윤이상은 86년 오 박사가  북한을  탈출한  뒤  가족구명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은혜를 베풀어 준 김일성 주석을 배반했을 뿐 아니라  칠보산연락소(한민전 

산하  대남흑색방송 구국의 소리를 전담하는 곳)비밀  소지자이므로  가족을  인질로  잡아둘 수밖에 없다”며 다시 북한에 돌아갈 것을 

회유했다고  적고  있다. 

 

윤이상은 북한에  동조하지  않는  오  박사를  힐난하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던  것으로  적혀 있다. “내 말을 듣지 않고 다시 경솔한 짓을 하면 당신 가족을 가만두지 않겠소.  왜  사람들을  집적거리고  다니며 北을 욕하는 거요. 가족을 잃어야 정신을 차리겠소? 통일운동에 나서라고 하지  않았소?  왜  좋은  글을  써서  신문이나 학술잡지에 내지 않소? 그렇게 하지도  않으면서  통일운동을  자꾸  훼방  놓고 다니면

당신 가족은 죽는 줄 아시오" 자기가  좋아서  북한에  갖다가  아내와 두 딸을 사지에 남겨두고 자신만 탈출한 못난 남자 오길남! 베를린

교민들에게는  아직도  그를  이러한  선입감에서  보기  때문에  서명운동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을 생각해 볼 때,

북한에 안 가겠다고 남편을 극구 말리지 못한 그의 아내 신숙자 씨는 제외한다  더라도  그의  자녀들을  어떻게 그냥 두고 난 몰라라 할

수 있겠는가?


통영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된 신숙자 모녀 구출운동에는 이미 1만명이 서명하여 유엔에 청원하였다. 그 과정에서  통영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윤이상국제음악회의 이미지가 손상된다는 반발도 심했다.베를린  한인회는  신숙자  모녀  구명을  위한  서명운동을  전개하여  지금까지 500여명의 서명을 받았지만 연말까지  계속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1. 연평도 포격도발 1주년 규탄 및 신숙자 모녀 구명을 위한 시위

  2. 신숙자 모녀 구명을 위한 항의시위

  3. 베를린 한인회, 추석행사에 고향을 담았다.

  4. 국민대 대학생 역사바로잡기 위해 베를린 방문

  5. 제66회 광복절 기념행사 및 재독 연합 체육대회

  6. 북한의 인권개선과 수용소 폐쇄 촉구시위

  7. 베를린한인회, 고양시와 MOU 체결

  8. 베를린 최대 행사 다문화 카니발 거리행진에 베를린 한인회, 문화단체 등 참가

  9. 제 20회 베를린 한인회장배 교민친선 배구대회

  10. 베를린 한인회장 정재근 총영사 겸 공사와 면담

  11. 베를린 글뤽아우프회 세계노동자들의 121 돌잔치

  12. 이명박 대통령 독일 공식방문

  13. 베를린 한인회 재독 한인총 연합회 정기총회에 참석

  14. 문태영 주독대사 초청 간담회

  15. 베를린 회장배 볼링대회

  16. 제 92주년 삼일절 행사를 한국 문화원에서 가져

  17. 역대 베를린 한인회장들 고문 및 자문위원으로 추대

  18. 베를린 자치 단체장 회의

  19. 회장단 대사관 방문 상견례

  20. 베를린 28대 한인회 첫 임원회의 및 상견례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