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광부의 파독은 1963년에 시작되어 1978년까지 계속되었으며 1980년까지 7,936명의 광부와 10,032명의 간호원이 한국으로 송금한 독일 마르크는 본격적인 차관경제가 시작되기 전에 중요한 외화벌이의 수단이었으며, 국내의 극심한 실업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하나의 출구이기도 했다. 1996년 통일원 발간 세계의 한민족 유럽편에 의하면 1992년 기준으로 베를린교민 수는 3,732명에 달하고 있다.
2004년 현재 약 5천명 가량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는 수도 베를린은 단일 도시로는 전 독일에서 한인이 가장 많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의 특징은 한국 여성과 유학생이 많다는 점이다. 베를린에 한국인 간호원이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이며 그 이전에는 몇 명 안되는 유학생들만이 있었다. 간호원과 결혼하기 위하여 베를린을 찾아온 한국 광산 근로자가 약 3백명이었다. 간호원의 상당수인 500여명이 국제 결혼을 하였다.
광산 근로자 이외에도 용접공, 선반공, 가스터빈 기술자들이 왔고, 1972년 원자력발전 관계로 기술자 1백여 명이 이곳에 왔으며 이들 중 일부는 귀국하고 일부는 잔류하였다. 한편 뉘른베르크(Nurenberg)에 기술 훈련차 들어온 200여명의 한인 중 약 20명이 베를린으로 유입되었다.
한국 유학생 수는 약 800명으로 공과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450명, 자유대학에 250명 그리고 예술대학에 100여명 정도로 확인되고 있는 가운데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은 공식행사장에서 한국 유학생수가 이천여명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밝혔다.
베를린은 간호원이 먼저 이주하고 이어서 광산근로자가 모인 곳으로 함부르크와 유사하다 말하자면 서부 독일 광산지대 이외의 도시에는 간호원이 먼저 정착하고 이들과 결혼한 광산근로자가 정착을 한 것이다. 베를린이 함부르크와 다른 점은 국제 결혼한 한국 여성이 많은 것이다. 이것은 한국 간호원이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 통일이전 베를린은 고도와도 같이 교통이 불편한 곳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 여성이 한국 남성을 만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고립된 도시로서는 유학생이 많다는 것이 베를린의 또 하나의 특성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광산근로자 이 외에도 다른 기술자가 전입,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는 특징도 있다.
베를린에 등록된 한인 단체로는 한인회, 한인회 이사회, 간호요원 회, 재독 대한부인회, 교역자 연합회, 경제인 연합회, 한인학교, 한독장학재단, 재독 한인 문인회, 한인인권옹호협회, T.U학생회, K.W.U.자치회, 지멘스친목회, M.A.N친목회, 식품연합회, 태권도 사범협회, 아리랑 무용단, 메아리 합창단, 연화 무용단, 테니스클럽, 골프클럽, 케겔클럽, 볼링클럽, 배구클럽, 바둑클럽, 당구클럽,등이다.
베를린 한인들이 다른 지역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예술단체와 운동클럽이 유난히 많다는 것이다. K.W.U자치회란 원자력발전 기술훈련차 와서 체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지멘스 회사에는 한국 광부 출신 근로자가 약 40명이 있으며 이들이 조직한 친목단체가 지멘스 친목회이다. 함부르크와 비교해 베를린에는 한인단체가 두배이상 많다. 한인회나 부인회 , 한글학교, 교회와 같은 일반적인 단체 내에는 특이하게 간호요원 회와 대한부인회가 있다. 베를린 만의 특수한 단체로는 교역자 연합회와 한인인권옹호협회 그리고 한독장학재단이 있다. 특히 한인인권옹호협회는 다른 도시에는 없는 베를린만의 단체였다. 함부르크와 달리 베를린에 없는 것은 한독협회였다. 베를린 한인들은 독일인과의 접촉이 적으며 베를린에 거주하는 독일들도 특별히 이러한 조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유 때문이라 여겨진다. 베를린 한인회도 다른 곳의 한인회와 조직이나 행사 면에서 유사하다
3.1절 행사, 추석놀이, 송년모임, 광복절행사 이외에 운동회, 당구대회, 볼링대회, 골프대회 등 친목 경기를 갖고 있다. 베를린 한인회에는 이사회가 있었는데 이것은 전직 회장들로 이루어진 모임이었다. 이 이사회는 한인회관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추진하고 한인회 자문을 하던 기관으로 한인회관 건립 후 이 모임은 무궁회(전직한인회장모임)와 한인회관 이사회(코리아 하우스)두 개로 나누어 진다. 베를린에는 두 개의 한글학교가 있으며 베를린 한글학교는 1981년도에 시작되었다. 금요일에 운영되는 요일학교이다. 또한 베를린에는 천주교 이외에 12개의 개신교 교회가 있다. 이들 중 독일 종교 청에서 인정하는 교회는 천주교와 베를린 한인교회뿐이다. 이 두 교회 이외의 다른 개신교 교회는 재독 기독교 협의회, 재 베를린 한인교회 교역자 협의회에 소속되어 있으며, 이들은 소망교회,제일교회, 선교교회, 백림교회, 성결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순복음 교회 그리고 4~5개의 소규모 교회 등이다. 이들 교회 외에 “홍법원”이라는 조계종 통도사 계열에 속하는 한국 법당이 있다. 이것 또한 베를린의 특색이라 하겠다.
베를린에는 여행사 8개, 식품점6개, 임비스 2개 그리고 식당이 10개 있다. 이들 베를린 한인 자영업의 특성은 식당과 식품점이 많은 것이다. 베를린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한국의 현지 상사가 다른 지역보다 적고, 베를린에서 좀 떨어진 코트브스에 삼성 코닝 회사가 있다. 2010년 완공을 생각하는 베를린 국제공항이 들어서면 한국과의 직항로개설로 인해 현지상사가 늘어나는등 교민경제도 활동화 될 것으로 예상되고있다. 베를린은 여타 독일 거주 한인사회와 마찬가지로 광산근로자와 간호원이 중심이 되어 이룩된 특수한 한인 이민사회이다. 광산근로자와 간호원 중에서도 특히 간호원이 중심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광산근로자들은 서부 독일 광산지대에 집중 근무하고 있었다. 이들이 현재와 같이 전 독일 대도시에 분포된 것, 특히 북부독일, 베를린 등지에 거주하게 된 것은 이곳에 한국 간호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한국인 간호원의 거주지에 광산근로자가 유입되어 정착한 것이다.
한인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주요 요인중의 하나가 여성들이 조직한 단체들이다. 외형상 각 도시에 있는 한인회가 주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내용에서는 여성단체가 주도를 하고 있으며 활발히 활동하고 잇다. 물론 많은 친목단체는 남성들이 중심이지만 최소한 한인사회의 공식적 행사를 주도하는 것은 부인회였다. 독일에서 북유럽과 유사한 공통점으로는 한인회가 교민사회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