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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안내

2006.09.25 11:55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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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개요

독일의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엘베강의 지류와 슈프레강의 합류점에 있는 독일의 수도이다. 즉,베를린은 바르샤바와 베를린 주곡에 있으며, 가항하천인 슈프레강이 흐르면서 하펠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베를린의 시구역은 동서 20km, 남북으로 30km의 비교적 넓은 약 870km2로서,서울면적의 1.4배나 되는 면적을 지니고 있다. 면적으로 볼 때에는 로스엔젤레스,런던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에 속한다. 크게 두 지역으로 양분해 보면, 서베를린 지역은 대부분 녹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교외 지구가 모여서 생긴 공동체이고, 동베를린은 시의 구시가지를 뜻한다.

'새끼곰'이란 뜻의 'Bearlin'을 따 이름지어진 베를린은 오랫동안 독일 역사의 중심지로 자리해 왔다. 한때는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물로 '육지의 섬'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동독 안에 갇혀 냉혹한 이데올로기가 대립했던 베를린은 15세기 브란덴부르크 제국의 수도였으며,이후 18세기에는 프로이센 왕국,19세기에는 비스마르크의 제 3독일 제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슈프레 강의 아테네'라고도 불리웠던 베를린은 통일 동독의 수도이기도 하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폐허가 되었었지만,프랑스의 꼬르뷔지 등의 유명한 건축가에 의해 현대적인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20세기에 이르러서는 독일 문화,예술의 중심일 뿐 아니라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도 인정받고 있다. 카바레의 여인 클레어 발도프,'짧은 시'의 시인인 오토 레이테르,작곡가인 홀렌더 등은 물론,현대 도시의 도안가인 하인리히 칠레 그리고 그의 동료 화가인 막스 리버만 등도 그들의 흔적과 인상을 이 도시에 뚜렷하게 남겨놓았다. 한때 이 도시는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갈리는 운명에 처하기도 했으나 통일 이후 이데올로기의 둘레에서 벗어나 하나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며,신생 독일의 중추로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문화적인 세계 도시로서도 명성이 나 있는 베를린은 베를린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건립한 베를린 앙상블로도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중심부로 들어 갈수록 울창한 숲과 호수로 둘러 싸여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 기능을 하고 있다. 베를린 중앙으로 흐르는 슈프레 강을 중심으로 하는 브란덴 부르크문 서쪽에 나 있는 티어 가르텐(Tiergarten)과 같은 공원들과 수많은 나무 숲이 베를린을 전원의 도시로 만들어 주고 있으며,호수와 강,운하가 곳곳에 퍼져 있는 젊은 이들의 문화,예술 활동이 활발한 도시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19세기 후반기에 베를린은 유럽의 가장 큰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으며,지멘스와 AEG와 같은 세계적인 상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오늘날 이 도시도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겪고 있지만,새 수도로 발전하는 이 도시는 사무와 법률 자문,기술 서비스 등에 산업의 촛점을 두어 독일의 대규모 빌딩들이 점차 들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데비스(Debis)와 소니(Sony) 회사들도 거대한 규모의 사무실 단지를 현재 건축중에 있으며,이곳의 프리드리히가에는 이미 초대형 쇼핑센터가 개장되었다. 국제 회의 장소로서도 베를린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 이며,베를린 국제 오디오,비디오 박람회는 전자 소비 시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크다.

독일에서 가장 큰 대학 도시 중의 하나이기도 한 이 도시는 모든 분야의 과학자들이 연구 수행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으로 소문이 나 있기도 하다. 대학 외에도 250여 개의 연구소들이 여기에 산재해 있으며,그 중에는 베를린 스토리지 링 신크로톤 방사능 연구소(Bessy),분자 의학 연구소,프로이센 문화 유산 연구 재단,정보 기술의 콘라트 추제 연구소 등이 있다. 루돌프 비르코프,로베르트 코흐,알버르트 아인슈타인과 카를 보슈,에밀 폰 베링,막스 플랑크와 프리츠 후버 등도 이곳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대표적인 이들이다.

영화 제작의 중심지이기도 한 베를린은 최고 권위의 베를린 영화제를 1951년부터 개최해 오고 있는데,이 영화제는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로서,칸느 영화제와 쌍벽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들이 잘 아는 '블루엔젤'의 마를렌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1901-1992)도 베를린 태생의 유명한 배우이다. 그 밖에도 신문 분야에서 경쟁력 있으며,독일 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행하는 '벨트지','베를린 조간','타게스 슈피겔','베를린 신문' 등을 출간하고 있으며,독일의 첫 라디오 방송이 1923년 여기에서 시작되었고,1931년에는 세계 최초의 TV 방송이 전파를 타고 나갔다. 그리고,역대 베를린 시장들 가운데에서는 전후 독일에서 안팎으로 큰 역할을 한 인사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이들이 바로 에른스트 로이터,빌리 브란트,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들이다.

교육
베를린에는 1948년에 창립된 베를린 자유대학(Freie Universitaet Berlin/FU)과 1799년에 공과 대학으로 창립되어 1946년에 종합 대학으로 승격된 베를린 공과 대학교 등 3개의 종합 대학과 1개의 종합 예술 대학,미술 대학과 전문 대학,교육 대학,프로테스탄트의 신학 대학,음악 대학,예술 대학 및 영화,행정 대학 등 6개의 단과 대학이 있다. 베를린 훔볼트 대학(Humboldt Uni. Berlin/HU)의 입학 서류 제출기간은 여름 학기는 1월 15일,겨울 학기는 7월 15일까지 지원해야 한다. 이 대학에서는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무료로 다른 외국어 및 독일어 강좌를 개설하였다. 강좌는 매학기마다 조금씩 다르지만,학기 초에 직접 찾아 가서 여기에 관련된 소책자를 참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베를린 자유 대학이나 훔볼트 대학들도 독일의 타 대학들과 마찬 가지로,모든 학생들에게 다양한 스포츠를 할 수 있는 강좌를 개설하였는 데,무료로 할 수 있는 운동도 있고,10마르크에서 몇 백 마르크까지 내야 되는 스포츠도 있다.

베를린 예술 대학(Hochschule der Kuenste/HdK)은 약 4400명의 학생들이 등록하였으며,그 중 600여 명의 외국인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교수 인원은 약 260명 정도이고,이 대학은 4개의 커다란 단과(문화,창조,음악,공연 예술)로 구성되어 있으며,각 단과마다 다시 몇 개의 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에도 구 동독 지역에 위치한 음악 전문 대학인 "Hans-Eisler"와 영화와 TV 학교로서 감독,촬영,시나리오 등을 공부할 수 있는 '독일 베를린 필름-TV 아카데미'(Deutsche Film-und Fernsehakademie Berlin) 등도 있다. 또한,1770년에 프리드리히 대왕의 명령에 의해 베를린에 광산학원(Bergakademie)와 1799년에 건설 학원(Bauakademie),그리고 1821년에 산업 학원(Gewerbakademie)이 세워져 베를린 공과 대학교의 중요한 전신이 되기도 했던 이 학교는 마침내,1946년,나치 정권하의 과거와 단절하기 위해 이름도 기술 단과대학에서 공과 대학교로 개칭하였으며,학과 내용 역시 바뀌었다. 1980년에는 베를린 사범대학이 해체되고 베를린 자유대학교(FU)와 베를린 공과 대학교(TU)로 흡수 되기에 이르렀다. 현재 베를린 공과 대학교는 독일에서 10대 대학교 중의 하나이며,공과 대학중에서는 가장 거대한 규모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독일에서 재학생 중 외국인의 비율이 가장 높은 대학교이기도 하다. 총 560 여 명의 교수진과 3만 6천명의 학생들이 재학중에 있다. 그 밖에도,경제 연구소와 29만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 기념 도서관,본래의 프로이센 국립도서관이 1954년 이래 독일 국립 도서관으로 개칭되어 총 240만 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110만 권의 서적과 70만 5천 부의 학위 논문을 소장하고 있는 훔볼트 대학 내의 부속 도서관 또한 훌륭하기로 익히 소문이 나 있다.

사회
19세기 후반기에 베를린은 유럽의 가장 큰 상업의 중심지 였으며,세계적으로 유명한 지멘스와 AEG와 같은 큰 회사들이 처음으로 이곳에 근원지를 마련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점차 새로운 역할을 충족 시키는 수도의 발전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베를린의 강조점은 전통적인 산업만이 아닌 서비스 부문과 분야가 점점 커 가고 있다. 즉,사무와 법률적인 자문,재정 서비스,마케팅,소프트웨어 부문,광고,기술 서비스,기술 교육 등이 그것이다.

베를린은 기계 엔지니어링,광학 공업,화학 및 의류 등의 경공업이 주요 산업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며,패션 중심의 주요 도시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도 독일 베를린의 기업인 프라이베르거사는 베를린에 있는 큰 규모의 스포츠 단체를 위하여 중요한 스폰서 역할을 하고 있다. "알베르또" 마라톤 대회는 매년 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백 만명이 넘는 관중들이 동원되곤 한다. 그 때마다 프라이베르거사는 알베르또 상표로 모든 참가자를 위하여 대규모의 파스타 피자를 제공하여 베를린시의 스포츠 행사에 크게 기여하고 있기로 소문이 나 있다. 그리고,그 밖에도 스포츠 팀의 지원에도 프라이베르거사는 매우 적극적인데,예를 들어 농구에 있어서 "알바 베를린",아이스하키에서는 "독수리 만하임" 등의 유럽 정상의 스포츠팀을 위해,이 외에도 대중적인 스포츠 분야에서도 재능있는 후진 양성과 젊은 선수들을 열심히 지원하고 있다.

하벨강과 슈프레 강은 구릉 지대에 있어서 교외 외곽으로 흘러 간다. 수 많은 자연 공원들과 경관 보호구,생물 서식권 지구의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이 지역은 특히,농경과 삼림이 주를 이루고도 있다. 삼림 지역에서는 호밀,밀,감자,사탕무우가 생산되고 있으며,베를린 주변에서는 채소와 과일이 많이 난다. 그 밖에,이 지역의 지하자원으로는 갈탄이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어,화력 발전에 주요 자원으로 쓰이고 있으며,비료 가공 역시 독일의 70%를 차지하고 있다.